[연작기획 ⓵] 채식인 150만 밥 먹을 곳 없다
비건 산업이 아니라 인권 차원의 제도 마련 시급
​기사 최초 등록: 19/12/18
​기사 최종 수정: 19/12/18
    동물성 음식이나 생활용품 등을 소비하지 않는 비거니즘은 이미 세계적인 화두이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9년은 채식주의자를 대상으로 한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고 했다. 국내에서도 채식인구가 150만 명을 돌파했다. 식품업계뿐만 아니라 뷰티업계, 패션업계에서도 동물을 죽이지 않고 상품을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개발 중이다. 하지만 육식을 먹지 않고 채식을 선택할 권리가 자유롭게 보장되지 않고 있다. 제도적 장치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동물에게서 얻은 음식은 안 먹는다”

    산업시장에서 열풍이 되고 있는 흐름들의 기반에는 모두 '인간은 동물을 괴롭히거나 해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윤리적 바탕이 있다. 이는 보통 ‘비거니즘(veganism)’이라고 부르고, 동물로부터 얻는 음식이나 생활용품을 소비하지 않는 이들을 '비건(vegan)'이라고 부른다. ‘채식주의(vegetarianism)’나 ‘채식주의자(vegetarian)’도 이와 같거나 상호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채식주의 안에서도 여러 층위가 나뉜다. 채식을 지향하고 실천하지만, 가끔 육식을 하는 이들을 ‘플렉시테리언’이라고 한다. 육류와 생선은 먹지 않지만, 달걀과 우유는 먹는 이들은 ‘락토-오보-베지테리언’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유는 마시되, 달걀까지도 먹지 않는 이들을 ‘오보-베지테리언’이라고 한다. ‘비건’은 육류, 생선, 우유, 알, 꿀 등 동물에게서 얻는 식품은 먹지 않고 오직 식물성 음식만 먹는다. 마지막으로 동물뿐 아니라 식물의 생명도 존중하는 의미에서 땅에 떨어진 열매만 먹는 이들은 ‘프루테리언’이라고 한다.

▲비거니즘의 형태 ⓒ그린피스
10년새 국내 채식인구 10배 증가

    국내에서도 채식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증가했다. 한국 채식 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는 현재 100만 명에서 150만 명에 이른다. 2008년 15만 명 기준으로 10배에 가깝게 증가했다. 개인적 취향으로만 여겨졌던 비거니즘을 실천하고 향유하는 이들의 증가에 발맞춰 국내 산업 시장도 채식 관련 상품을 개발, 출시하고 있다.

    편의점 CU는 지난 11월 5일을 시작으로 ‘채식주의 간편식 시리즈’를 출시했다. 편의점 기업이 채식 간편식을 내놓은 것은 국내 최초다. 편의점 ‘세븐 일레븐’도 ‘언리미티드 만두’라는 비건 간편식을 출시했다. 편의점 업체들은 비건 제품의 가격 또한 기존의 편의점 간편 식품과 비슷하게 책정했다. 일반 식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이었던 기존의 상황에 비하면 접근성이 훨씬 높아진 셈이다. 대중적이고 이용이 편리한 편의점에서 비건 식품들을 출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비거니즘의 대중화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국내 뷰티업계에서도 여러 비건 화장품들이 개발되고 있다. 여성 화장품 브랜드 ‘아떼’는 비건 화장품 브랜드로서, 프랑스의 비건 인증기관인 ‘이브(EVE)’로부터 인증 받았다. 동물성 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국내 최초 비건 인증 립스틱을 제작하기도 했다. ‘아워 글래스’ 또한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 크루얼티 프리 브랜드이다. 이곳은 국제 동물권 단체인 ‘페타(PETA)’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았으며 2020년까지 전 제품 100% 비건 제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 5월 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동물해방물결 회원들이
소와 돼지, 닭, 개 모양의 대형 풍선을 설치하고 ‘탈육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기업들이 비거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상품들을 출시하는 현상은 긍정적이다. 그런데도 국내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속한 공간 안에서 자유롭게 신념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가 절실하다. 이미 존재하는 비건 식단을 먹기보다, 어쩔 수 없이 찾아 먹어야만 실천 가능한 지금의 사회 시스템은 문제가 있다.

국가 인권위, 채식 헌법상 ‘양심 자유’ 해당

    지난 12일에 동물권, 채식 관련 단체들이 모여 채식주의자의 군대 내 채식 선택권 보장을 국방부에게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국가인권위 앞에서 열었다. 이들은 “채식 선택권은 채식인들의 행복추구권과 건강권, 자기 결정권, 평등권, 양심의 자유 등에 결부돼 있다”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권위에서는 지난 2012년에 채식 요구 권리를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하기도 했다.

    군대에서의 채식 선택권 보장 문제는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수직적이고 강압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대표적 공간, 군대에서 육식을 거부할 권리가 보장된다면 이는 큰 의미를 지닐 것이다. 단지 군대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전히 많은 학교, 직장 등의 공적인 공간에서 ‘무엇을 먹지 않고 무엇을 거부할 것인지’에 대해 완전히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얼마 전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더 이상 모피를 입지 않겠다고 이야기했다. 앞으로 인조 모피를 사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고 동물권 운동단체들로부터 많은 환영을 받았다. 특히 영향력 있는 동물권 단체인 페타(PETA)는 “인조 모피를 입겠다는 여왕의 결정이 동물들을 피비린내 나는 고통스러운 죽음에서 구하고 싶어 하는 진보적인 소비자, 기업, 국가와 궤를 같이 한다”고 이야기하며 여왕의 결단을 지지했다. 영국 여왕의 결단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공적이고 정치적인 분야에서의 영향력 있는 사람이 비거니즘과 관련하여 긍정적 인식을 드러냈을 때 생기는 사회적 파급효과는 지대하다. 또한, 사회적 인식이 향상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로도 작용할 것이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미국 주들 가운데 최초로 천연모피 제품을 만들거나 팔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했다.

    비거니즘을 하나의 ‘유행 코드’로 보았을 때 생기는 지금의 현상들은 어떤 면에서는 긍정적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경제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되어서 개발하는 것보다도, 비거니즘의 가치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한다면 그것에 대한 기초적인 제도와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가 비거니즘을 존중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실천하고 지향할 때, 식단 앞에서 고민하고 상처받아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더욱 줄어들 것이다.

김산하 기자
juniorsanha@naver.com
이동준 기자
junscar10@naver.com

김동환 김산하 김승준 김연준 노현준 류형민 민채원 박상린 박서영 변상현 서영찬

서예원 우지민 이동준 이병인 이원준 이혜원 전예린 정민기 정소현 최영묵

잉크 18.0 여운 │ 서울특별시 구로구 연동로 320 │  TLE: 02-2610-4114

E-MAIL: 1334duswns@naver.com  │   등록일자: 2019/12/18

발행인: 최영묵 │ 편집인: 김승준

Copyright ⓒ ink v.18.0 SungGongHoe Univ. Webzin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