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기획 ⓶] 성공회대에서 ‘비건’으로 살기
학교 주변 35개 식당 777개 메뉴 중 단 세 가지만 비건식
​기사 최초 등록: 19/12/18
​기사 최종 수정: 19/12/18
    최근 성공회대학교 내에서도 비거니즘이 주요 화두에 오른다. 꾸준히 제기되는 비거니즘에 관한 고민과 안건들이 이를 증명한다. 학생회에서 진행하는 야식 사업은 ‘비건’과 ‘논비건’ 메뉴가 준비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에도 불구하고 교내에서 비거니즘을 실천하는 것은 개인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성공회대 내에서 비거니즘을 실천 중인 다운 씨는 조금 번거롭더라도 도시락을 싸거나 간식을 챙겨 다닌다. 교내엔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더는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학식에서 “어묵, 햄, 맛살, 계란” 등을 빼고 김밥을 주문(일반 김밥과 같은 값을 지급)하는 게 가능했지만, 현재는 아예 분식이 사라졌다. 그들이 도시락을 챙겨오지 않았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편의점(CU)에서 비건도 먹을 수 있는 간식이나 음식을 사거나, 조리할 때 가치관과 어긋나는 재료를 뺄 수 있는지 확인하며 ‘허락’된 식당에서 식사하는 일뿐이다. 이를 ‘허락’됐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간혹 발생하는 점주들의 참견 때문이다. 계란을 빼달라고 하면 ‘계란이 들어가야 맛있는데 그걸 왜 빼’하는 말이 돌아오기도 한다. 어쩔 수 없는 타협을 볼 때도 있다. 김치나 양념에 조개류나 동물성 성분이 들어갔는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반복적인 상황은 다운 씨에게 채식을 포기한 채 밥을 먹도록 한다. 비단 식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넘쳐나는 일회용품과 수업 시간에도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고기-동물 사체’에 대한 이야기들. 모두 성공회대 안에서 채식주의자로 존재할 때 겪는 불편함이다. 채식에 대한 생각이나 배려를 느낄 수 없는 이런 분위기는 결국, 학교에서 생명의 죽음이 필요하지 않은 음식을 먹을 권리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 어(魚)디 계(鷄)시죠? 소(牛), 돼지(豚) 없는 식당
    정확한 실태를 알기 위해 학교에서부터 온수역까지 학생들의 생활 반경의 식당들을 조사했다. 우리 주변엔 총 35개의 식당(학식, 깐투 미포함)이 있고 메뉴판에 오른 메뉴는 모두 777개지만 페스코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247개,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14개였다. 이는 호프집의 과일 안주와 마른안주를 포함한 통계이기 때문에 오로지 한 끼 식사를 기준으로 세운다면 페스코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은 91개,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3개로 줄어든다. 통계에 잡힌 콩국수는 채식이긴 하지만 계절 메뉴이기 때문에 요즘 같은 날씨엔 먹기 힘들다. 페스코 식사로 분류한 메뉴는 학생 1인이 점심 메뉴로 선택할 수 있는 가격대와 양의 메뉴로 한정 지었는데, 추어탕 같은 요리는 꽤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기 때문에 통계로 잡았지만 모든 채식 인구에 적용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없다.
▲성공회대학교 주변 음식점의 메뉴 현황

* 개별 요리에 들어가는 양념을 모두 파악하기는 무리가 있어 장류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감자튀김도 감자만 튀기는 식당이 없어서 통계에서 제외했다.

 

    학교 앞에 3개나 자리 잡은 중국 음식 전문점은 특히 메뉴가 많은 만큼 타 식당들과 비교해서 페스코나 비건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같은 메뉴임에도 어떤 곳은 고기-동물 사체가 들어간다고 하고 또 어떤 곳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고, 같은 곳에서 다시 물어보면 말을 번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중국집에선 중국 음식 특성상 고기·동물 사체가 안 들어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가장 가까운 식당인 ‘학식’과 ‘깐투치오’에는 채식 식단이 따로 존재하진 않지만, 일부 채식인은 먹을 수 있는 반찬이 있을 때 가서 한 끼를 해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당연한 선택이 아니며 비인간 동물의 사체를 보는 것이 힘든 채식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한 가지 음식이라도 비인간 동물의 사체가 포함된 식단이면 소비하지 않는 채식인도 존재한다.

● 이대 ‘비건 김밥’, 국민대 ‘채식 학식’ 등장

    이화여대 앞 ‘영미 김밥’은 작년부터(2018) ‘비건 김밥’을 새롭게 선보였다. 김밥에서 햄이나 달걀을 빼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으면서 ‘기존에 재료를 빼기보다 새 메뉴를 추가하는 게 낫겠다’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식당 내에서 김밥을 먹고 가는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국물에는 멸치가 들어갔다고 미리 알린다. 비건 베이커리도 열풍이다. 홍익대학교 인근에 있는 ‘더 브레드 블루’는 계란과 우유, 버터를 사용하지 않고 빵을 만든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식물성 재료만 사용하는데 맛에서 밀리지 않고 가격도 적당한 편이라 학생들과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 그리고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들도 이용한다. 이런 시도들은 채식인의 식탁을 안전하게 만들며 더욱 풍성한 식탁으로 인도한다.

    학식에 채식 메뉴를 도입한 학교도 있다. 국민대학교 총학생회는 올해 1학기에 비건 학식 메뉴를 시범 운영했다. 많은 학생으로부터 채식 메뉴 도입을 지지받는 등 긍정적 반응을 받았으며 현재 일주일에 한 번(수요일) 50개 한정으로 채식 학식이 판매되고 있다. 서울대학교의 ‘감골식당’도 비건 메뉴를 제공한다. 다소 비싼 감이 있는 가격과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하루 2시간인 운영 시간에 대한 지적이 있지만 지속해서 운영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채식주의자-페미니스트 모임인 ‘뿌리:침’은 채식을 하는 학우들을 위해 비건 학식 도입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또한 학교 주최 행사에서는 비건식을 필수적으로 마련해 채식인 학우가 소외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실제로 ‘뿌리:침’은 2017년부터 학식에 비건 채식 식단 도입을 추진해왔다. 총학생회에서 수요 조사를 시행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업체와의 접촉도 있었다. 하지만 총학생회와 채식인 모임의 협업만으로 실제 학식이 달라지는 일은 없었다. ‘뿌리:침’은 행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실질적인 메뉴 도입으로 끌어내기 위해선 학교의 적극적인 노력과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치킨과 삼겹살에서 두유와 김밥으로

    ‘치킨’이나 ‘삼겹살’이 뒤풀이 메뉴로 정해지는 게 흔해 자리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때가 있고, 단체 행사가 잦은 대학 생활을 특성상 흔하지 않은 채식주의자는 무리에서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채식을 선택함과 동시에 쏟아지는 시선은 부담으로 돌아가고, 일상 자체가 도전이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는 비거니즘을 까다로운 식문화·식습관이 아닌 개인의 삶의 태도이자 생활방식으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며, 그들에겐 그들의 삶의 지향점이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자주 가는 호프집의 메뉴판. 공기밥을 제외하고 비건식이 없다.

    최근, 깐투치오에서 우유를 두유로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이 마련됐다. 교내 비건 인구가 소비할 수 있는 음료가 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식에서 사라졌던 ‘김밥’도 내부적인 조정이 있을 것으로 확인됐다. 내년 3월, 개강에 맞춰 변화할 수 있도록 학생회가 ‘채식 김밥’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논의 테이블에 올린다고 한다. 느리지만 멈춰있지 않는다는 사실은 희망적인 메시지가 된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거나, 왜 채식을 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큰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는 성공회대를 기대해본다.

박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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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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