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적 안목에서 유소년 축구 육성방안 마련해야
유소년 선수 쟁탈전, 혼란만 가중…장기적 혁신 필요
​기사 최초 등록: 19/12/18
​기사 최종 수정: 19/12/18
▲러시아 월드컵 이후 관련 기자 간담회를 진행 중인 정몽규 회장 ⓒ대한축구협회
    2002년 이후 잠잠했던 붉은 악마가 최근 러시아 월드컵,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으로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6월 호주전까지 A매치 7경기 연속 매진을 달성할 정도였다. 그러나 러시아 월드컵과 카타르 아시안컵에서는 각각 조별 예선과 8강 탈락이라는 실패를 겪었다. 이에 많은 문제점이 언급되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화두가 된 문제점이 바로 유소년 육성 시스템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현역 선수들, 전문가들도 다양한 의견을 내었고, 대한축구협회(KFA) 역시 변화를 약속했다. 이후 약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무엇이 어떻게 변화됐는가?
결과 위주의 입시제도와 경쟁 구도 형성
    유소년 선수들의 입시제도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경기 결과와 성적이다. 김해룡 축구 테크니컬 센터의 단장 겸 하나FC 감독을 맡고 있는 김해룡 감독은 “어릴 때는 키 크고 덩치 큰 선수가 잘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성적 위주 입시제도 때문에 팀에서는 왜소하고 체구가 작은 선수보다 당장의 성장이 빠른 선수를 경기에 뛰게 만든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선수들은 당장은 잘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성인이 되면 신체적인 이점이 따라 잡히기 때문에 결국 기본기와 기술이 좋은 선수에게 추월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몸집이 작은 친구들은 왜소한 체구를 가졌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얻지 못하며, 어릴 때 다져야 할 기본기와 기술보다 당장의 경기에만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훈련을 진행 중인 김해룡 감독.
ⓒ김해룡 축구 테크니컬 센터
    김 감독은 “계속 경기를 하며 경기력 향상을 위주로 하는 팀들은 개인 능력이 좋은 선수가 없어 (우리 센터에서) 2~3년 기본기를 잘 가르쳐 놓은 선수들을 빼간다”라며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결과 위주의 입시제도가 팀 간 경쟁 구도를 강화하면서 개인 능력이 좋은 선수를 영입하려는 싸움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어린 선수들에게 정신적 혼란과 어려움을 줄 수 있다.
    중학교 1학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던 박근호 씨(21)는 선수 생활을 그만두게 된 계기 중 하나로 스카우트 제의로 인한 학교와 감독님, 코치님들 사이에 갈등을 꼽았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보다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는 학교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라고 말하며 “새 학교로 전학을 희망했지만, 그 과정에서 학교와 감독님, 코치님들이 장기간 마찰을 빚었고 이에 정신적으로 지치기 시작했다”라며 팀 간의 선수 쟁탈전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KFA, 한국프로축구연맹, 8인제·‘골든 에이지’ 등 적극시도
▲2018년 11월 30일 천안 상록리조트에서 열린 해외강사 초빙 교육 전경. ⓒ대한축구협회
    변화를 약속했던 대한축구협회(이하 KFA)도 이를 저버리진 않았다. KFA는 소년체전도 대한체육회와 협의해 2019년부터 모든 초등 리그에 8인제 경기를 도입했다. 이미 벨기에, 잉글랜드, 독일 등 여러 축구 강국에서도 시행하고 있는 이 제도는 좁은 경기장에서 적은 인원이 뜀으로써 볼 터치, 드리블 상황, 1대1 상황, 득점 기회 등을 늘려준다. 이를 통해 경기의 즐거움과 개인 능력의 향상을 가져오는 효과가 있다.

    이 제도는 이전부터 시행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지도자에 대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며 시범 운영만 진행됐었다. 그러나 2018년 11월 30일, 천안 상록 리조트에서 이틀간 약 250여 명의 지도자를 대상으로 해외 강사 초빙 교육이 실시됨과 동시에 8인제 경기 도입을 확정 지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소년 8인제 이동형 알루미늄 축구 골대 300개를 보급하는 등 정착을 위한 지원도 아낌없이 하고 있다.
▲8인제 경기를 진행 중인 금석배 초등리그 ⓒ대한축구협회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축구 강국의 유소년 시스템을 연구하여 한국 축구에 적용한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 또한 진행 중에 있다. 이 프로그램은 ‘기본에 충실한 창의와 도전’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2014년부터 운영되고 있다.
    축구 기술 습득이 가장 빠른 골든에이지(12~15세)를 중심으로 프리 골든에이지(6~11세)와 포스트 골든에이지(16~19세)까지 연령별로 세분화된 프로그램이다. 참가 선수 선발은 소속팀 지도자의 추천, 전국대회 및 주말리그 참관, 선수DB를 종합해 KFA 전임지도자가 담당한다.
    연간 골든에이지에 선발되는 선수는 지역센터, 광역센터 450명, 합동 광역센터 320명, 영재센터 240명 정도 규모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얻은 성과가 바로 아시안게임 우승과 U-20 월드컵 준우승이다.
▲골든에이지 소개 ⓒ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2017년부터 구단의 유소년 육성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K리그 YOUTHTRUST’ 사업을 시작했다. 이는 2년마다 실시되는 유소년 육성 분야 ‘클럽 라이선스’와 같은 사업으로 비전과 철학, 선수 풀 & 수급, 유소년 조직, 지원 프로그램, 시설 및 인프라 등 유소년 육성을 위해 갖춰야 할 총 10개 분야에 대해 구단별 현 수준을 진단하고 향후 개선방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다룬다.
    지난 28일 오후, ‘K리그 YOUTH TRUST 2019’ 결과 발표회가 축구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번 ‘K리그 YOUTH TRUST 2019’는 2017년에 비해 대부분 분야에서 향상된 지표를 보이는 성과를 얻었다. 연맹은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YOUTH TRUST 사업을 통해 각 구단의 유소년 육성 역량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를 통해 한국 축구의 근간이 되는 K리그와 유소년 육성의 수준을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체조건 맞춘 팀 구성, 학업·클럽 분리 운영 등 변화 필요
    KFA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 입시제도는 변화하지 않고 있다. 김해룡 감독은 “우리 센터에 다니는 중2 친구가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재능이 있는 친구임에도 몸집이 잡아 경기를 많이 못 뛰니 흥미를 잃었다”고 말했다. 결과 위주의 입시로 여전히 왜소한 친구들은 기회를 잡기가 어려운 것이다.
    김 감독은 “피파랭킹 1위를 기록 중인 벨기에에서는 성장이 빠른 선수 팀과 신체적인 조건이 작은 선수 팀, 두 팀으로 운영을 해서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며 이런 시스템을 통해 어린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는 입시제도에 모든 것이 맞춰져 있다”며 입시제도가 큰 영향을 끼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 김 감독은 “유럽과 같이 학업과 축구 클럽을 분리 운영하여, 아이들이 어릴 때는 축구를 즐기게 하고 공부에도 집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다 잘하는 선수는 프로로 나가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학업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선수로서 성공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그는 부모님들의 욕심이 너무 많다며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대회에 나가 골을 넣고, 우승을 해야 잘 하는 줄 안다. 어릴 때는 그런 것보다 기본기와 기술을 몸에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7~8년은 기본기와 기술을 잘 다져야 하는데, 부모님이 기다리지 못해 그걸 못하고 (다른 팀으로) 가버리면 어중간한 선수가 돼서 안타깝다”며 아쉬워했다.
유소년 시스템, 선수 위한 배려와 존중 필요

    김해룡 감독과 박근호 씨는 “유소년 축구는 이기는 축구보다 즐기는 축구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성공회대학교 정윤수 교수는 “경쟁과 승패는 스포츠의 본질임에도 많은 명장들은 즐기라고 한다”라며 “즐긴다는 것은 이기면 좋고 져도 그만이라는 식의 승패와 경쟁의 엄중함을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 경쟁을 준비하고 훈련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현장의 지도자들이 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유소년을 가르칠 수 있도록 배려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선수들의 역량과 수준뿐만 아니라 이들의 삶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냉정하게 운동선수 생활을 하다가 국내외에서 실업선수나 프로선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전체 5%도 되지 않는다. 또한, 국가대표는 직업이 아니다. 평생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부상 혹은 은퇴 이후의 삶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선수 생활 이후의 삶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사회와 일정하게 단절되는 것은 곤란하다. 가족의 일상성이 유지되고 어린 선수들의 다양한 삶의 관계가 유지되어 폭넓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요한 크루이프와 FC바르셀로나 구단이 1990년대 만든 FC바르셀로나 유소년학교인 ‘라 마시아’가 있다. 이 곳의 가장 큰 특징은 역설적 의미로 ‘축구를 덜 가르친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만 축구를 익히며,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를 한다. 축구 외의 학문과 세계도 알아야 더 잘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또한, 축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를 배운 이들은 이후에 구단 행정, 국제 축구 연맹(FIFA), 스포츠 산업 등으로 진출한다. 한국 축구는 당장 16강, 눈앞의 결과가 아니라 장기적인 인식과 선수들의 삶에 대한 존중, 체계적인 산업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노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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