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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안전지킴이’의 안전은 누가 지키나?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가구 방문노동자
​기사 최초 등록: 19/12/18
​기사 최종 수정: 19/12/18
    지난 9월 19일, 울산 경동도시가스 검침원들이 회사와 안전대책을 합의했다. ‘탄력적 2인 1조 근무제도’, ‘건수 성과제 폐지’, ‘감정노동자 보호 매뉴얼 마련’, ‘예약점검 확대 시행’ 등 파업에 돌입한 지 4개월 만의 일이었다. 노동자들은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외치며 울산 시의회 옥상에서 고공농성을 하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가구 방문 여성노동자, 성희롱, 추행, 폭력에 무방비

    이번 파업은 경동도시가스 여성 노동자인 A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단 사실에 분노한 그녀의 동료들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5월 20일부터 진행됐다. 안전 점검 현장에서 거주자였던 남성에게 감금과 추행 위협을 받았던 기억이 A 씨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기까지 한 것이다. 며칠 전 서울에서 도시가스 검침 업무를 하던 B 씨도 성추행을 당했다. 검침하는 사이 남성 고객이 다가와 팔과 허리 사이에 손을 집어넣으며 음담패설을 쏟아 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한 뒤에야 그 집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B 씨는 그날 밤, ‘스트레스성 과호흡’으로 응급실을 찾아야만 했다.

    폭언과 갑질, 성희롱·추행·폭력이 만연한 노동환경은 점검 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애써 가려져 왔다. 노동 강도에 비해 적은 급여와 불안한 고용 형태도 문제로 제기됐다. 그리고 이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한 가지 사실이 더 드러났다. A 씨와 B 씨가 겪은 일은 가스 검침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가구 방문노동자 중에서 ‘여성’의 비율이 훨씬 높은 재가요양보호사나 통합사례관리사에게도 이런 사례들이 확인됐다.

    거동이나 일상생활이 불편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1대 1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재가요양보호사들에게는 그들만의 고충이 있다. 그들은 서비스 이용자들이 사회적 약자에 노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성희롱·추행을 당해도 도망칠 수 없다. 당장 현장을 벗어나는 게 이용자 생명에 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발하더라도 적절한 대처는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문제의 원인을 재가요양보호사의 행실로 치부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직할 게 아니라면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침묵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통합사례관리사의 ‘위험천만한’ 노동환경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여성 방문노동자 노동실태 연속 간담회’를 진행했다. 총 세 번의 간담회가 진행됐고 11월 13일은 00구 희망복지지원단 소속 통합사례관리사 A 씨를 통해 현장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대상자 집에 방문한 통합사례관리사 A 씨

    “전국 928명 중 남성은 5~60명이 전부, 부탁드립니다. 남성으로 뽑아주세요.”

    통합사례관리사는 지역 사회서비스와 연계하여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한다. 여성 소개를 요청하거나 성적인 농담, 노골적으로 1인 방문을 요청하는 등 성희롱에 쉽게 노출되지만 강한 대처는 사실상 어렵다. 업무 휴대전화를 지급하지 않으니 관리사의 개인정보가 노출되고, 방문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보니 계속해서 대상자와 대면하기 때문이다. 가정방문 시엔 2인 1조가 원칙이지만 개인이 맡는 업무량이 과다하기 때문에 동행이 불가능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애써 화제를 돌리는 것과 퇴직으로 빈자리가 생길 때마다 남성 근로자를 뽑아달라고 호소하는 일뿐이다.

 

    “통합사례관리사는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권하고 싶지 않아요.”

    노동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엿볼 수 있는 말이었다. 경험이 없으면 일하기 힘들고 노련미가 없으면 본인이 다칠 수 있다며 어린 사람에게는, 특히 사회복지의 꿈을 가지고 있는 친구라면 더욱 권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통합사례관리사의 가장 큰 부당처우 중 하나는 채용 시 경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1년 차와 10년 차의 급여가 같은 상황이 그들의 현주소이다. 그러나 이런 열악한 상황에 대한 목소리는 ‘감정 노동’과 ‘업무 특성상’ 같은 핑계에 가려지고, ‘고객만족도평가’에 지워진다.

감정노동자·방문노동자 보호 제도화해야

    지난해 10월 고용노동부가 낸 ‘감정노동 보호 가이드북’은, ‘방문서비스의 2인 1조 수행을 권고’한다. 법으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권고에 그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 적용된 사례는 없었다. 회사의 입장에선 인건비가 더 드는 ‘성가신 권고 한 줄’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성 가구 방문노동자’가 겪는 ‘성희롱·추행·폭력’같은 위협적인 상황은 ‘권고’한다고 그치지 않는다. 타인의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 일터가 되는 가구 방문노동자들은 그 한 줄이 법에 명시되길 간절히 바라고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가구방문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필히 제도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시에 업무를 중지할 수 있는 권리도 행사할 수 있어야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백한데 법에 대책이 명시되어있지 않은 것은 크나 큰 모순이다. 간단한 일, 돌봄 노동 등이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에서 일어나는 무시와 폭언, 그리고 성적 위협에서 안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권리이다. 특정 사건만을 위한 법 말고,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위험 상황에서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

정소현 기자
hyeom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