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의료법, 처참한 근무환경…간호법 제정 시급
간호조무사가 간호사 업무, 간호사가 의사 업무…영역 혼란
​기사 최초 등록: 19/12/18
​기사 최종 수정: 19/12/18

    지난 10월 30일, 대한간호협회는 광화문에서 ‘2019 간호정책 선포식’을 개최했다. 행사에 참여한 간호인들은 의료 현장의 고질적 문제를 야기하는 낡은 의료법을 비판하고, 간호법 제정을 요구했다.

    대한민국 보건 의료의 총괄 법안인 의료법은 1951년 제정됐다. 의료법은 근간이 오래된 법으로 변화하는 의료 환경을 반영하지 못한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인을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조산사 ▲간호사 5명으로 포괄하여, 그들의 업무 및 역할을 명시하고 있다. 의료인은 직무에 따른 개별 의료행위를 행하지만, 의료법에서 모든 의료인을 포괄하여 규정하고 있어 상호 간 업무 충돌을 일으킨다. 또 현행 의료법이 명시하는 의료인의 업무 및 역할이 모호해 병원이 이를 악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바로 간호사다.

의료법, 변화한 간호업무 및 교육과정 포괄 못 해

    의료법 제2조 제2항 제5호에 따르면 간호사의 업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다. 의료법이 명시하는 간호사의 업무는 ‘진료의 보조’로만 한정돼 있어 다변화한 간호업무 수행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응급 상황 시 간호사들이 행하는 의료 행위가 불법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응급전문간호사는 자신의 교육 과정에 있는 ‘기도삽관술’이란 술기를 응급환자에게 행할 수 없다. 의료법이 명시하는 간호사의 업무를 넘어선 의료행위이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교육과정에서 이수하는 의료행위를 행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의료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간호업무는 다변화하고 교육과정 역시 진화했지만, 이를 의료법이 포괄하지 못하고 있어 현행법의 한계가 드러난다.

간호인력 자격요건 있지만 업무 규정 미흡

    현재 간호업무 수행 인력은 ▲간호사 ▲전문간호사 ▲조산사 ▲간호조무사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은 간호업무를 수행하는 대전제를 공유하지만, 각 역할에 필요한 자격 요건과 면허에 따른 업무 범위 등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의료법에는 간호인력 업무를 구분하는 명확한 규정이 부재하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경우가 그렇다. 간호사는 4년제 간호대학 졸업 후, 국가고시를 통과한 사람에 한하여 면허를 발급받는다. 간호조무사는 특정학위를 요구하지 않으며, 면허가 발급되지 않는 비의료인이다. 둘은 자격요건이 엄연히 다른 직종이다. 그러나 의료법이 명시하는 간호조무사 업무 범위는 ‘간호보조 및 진료보조’다. 이는 의료법의 간호사 업무 범위인 ‘진료보조’ 영역을 침범한다. 역할별 요구 면허는 존재하지만, 업무의 경계가 모호하다. 이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역할을 동일 인력으로 간주할 수 있다.

간호사 대신 면허 없는 간호조무사 주요 업무 수행하기도

    간호조무사는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 조항에 따라 의료행위가 포함된 간호사 업무를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의료법 시행규칙 제38조 제3항에서 ‘간호사의 인력 수급이 필요할 때, 간호사 정원의 일부를 간호조무사로 충당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해 기본법과 상충한다. 병원이 간호사 대신 면허가 없는 간호조무사를 대체 고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둔다.

 

    간호조무사는 간호사에 비해 낮은 임금을 받는다. 병원 입장에선 두 직종의 업무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에 간호사 대신 간호조무사를 고용할 경우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간호조무사의 의료행위로 이어질 수 있어, 의료의 질을 하락시킬 우려가 있다.

    병원 현장 실습을 경험한 간호대학생은 실제로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를 대체 인력으로 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대학교 간호학과 김명진(간호 4) 씨는 “일부 병원의 경우, 병동의 간호 인력을 간호조무사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다.”며 “우리는 간호사에게 교육받아야 하는데, 실습 나가면 대부분이 간호조무사다. 그럼 우리는 실습을 간호조무사한테 배운다”고 말했다. 비의료인인 간호조무사가 간호사를 교육하는 것이다. 이어 그는 “진료의 보조와 의료 행위는 간호사의 업무인데, 의사 진료 보조를 간호조무사가 한다. 심지어 제왕절개를 하면 간호조무사가 봉합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불법이 자행되는 의료 현장을 지적했다.

의사 대신 처방하고 회진 도는 PA간호사

    모호한 업무영역으로 인해 업무 범위를 넘나드는 관계는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만이 아니다.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일명 PA간호사(이하 PA)는 의료법상 존재하지 않는 직업이지만, 병원 현장에서는 없어선 안 될 핵심 인력이다.

    PA는 회진, 처방, 봉합, 수술 보조 등 의사 업무를 대신한다. 김 씨는 “간호사도 회진을 돌지만, PA는 의사 영역의 회진을 돈다. 직접 처방도 내린다”며 “근데 환자들은 모른다. 흰 가운 입으면 의사인 줄 아니까, 악용해서 PA한테 흰 가운 입힌다. 저게 PA인지 의사인지는 자기들만 안다”고 전했다.

    PA가 행하는 업무는 당연히 불법이다. 그럼에도 PA는 부족한 의사 인력을 채우기 위해 현장으로 떠밀린다. 이에 대한간호협회(이하 간협)는 지난 10월 1일 성명서를 통해 “불법과 합법의 담장을 아슬아슬하게 걷도록 강요받고 있는 낡은 법제를 정비하고 나아가 현대 보건의료체계에 맞는 간호서비스 체계를 구축하고, 의사 업무를 담당해야 하는 환경에 있는 PA의 어려움을 속히 해결해 달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극한의 근무환경…인력 부족에 따른 악순환

    간협에 따르면 국내 간호사의 평균 근속기간은 6.2년으로 외국 평균인 18.1년의 3분의 1수준이다. 대부분이 근무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이다.

    우리나라 종합병원의 경우 간호사 한 명당 평균 43.6명의 환자를 담당하고 있다. 의료선진국인 미국의 5.7명, 노르웨이의 3.7명에 비해 훨씬 많은 숫자다. 이는 간호사의 환자별 소요 시간을 줄여 안전 관리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환자의 생사가 오가는 중환자실도 간호인력이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김 씨는 “의료선진국의 중환자실은 간호사 환자 비율이 1대1인데, 우리나라는 1등급 병원이 1대 4다. 심정지를 처치하려면 (간호사가) 6명은 필요한데, 애초에 중환자실 당직자가 6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극한의 근무환경으로 인해 간호사들이 중간에 그만둬, 경력자가 부족한 것도 문제다. 김 씨는 “병원에 가면 (간호사가) 1, 3, 5년 10년, 그다음이 20년 차다. 10년 차 20년 차는 그마저도 관리직이다”라고 얘기했다. 이어 “그럼 1, 3, 5년 차가 대부분의 일을 한다”며 “한 시간에 환자 40명 봐야 하면 한 사람당 1분 꼴로 보는 거다. 한 명당 5분은 소요해야 하는 술기가 있는데, 미숙한 사람이 1분 안에 해결해야 하니 사고가 안 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의료 현장에는 간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지만, 간호사가 없는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8년도 간호 면허 등록자는 39.4만 명이다. 그러나 활동자 수는 19.5만 명으로 면허 등록 수 대비 49.5%밖에 되지 않는다. 근무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간호사가 많음을 알 수 있다.

    간호사당 환자 수에 대한 제한 및 권고가 없으니 근무환경이 악화된다. 근무환경 악화로 인해 간호사들이 중간에 그만둬 인력이 줄어든다. 인력이 줄어드니 근무환경은 또 나빠진다. 악순환하는 것이다.

▲김명진씨는 21년 1월 국가고시에 통과하면 간호사 면허를 얻는다.
간호법 제정은 그에게도 생사가 걸린 문제다. © 서예원 기자
간호사 처우개선은 국민건강에 직결된다

    앞선 이야기들은 의료법이 현 의료 현장을 반영하지 못해 생긴 문제들이다. 김 씨는 “현재 간호사를 위한 법적 보호 장치가 없음에 불만을 느끼고, 간호사의 권익 보호와 처우 개선을 위해서라도 단독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간호직 입장에서는 (간호법 제정이) 사활을 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표현했다. 그의 말처럼 간호법 제정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그러나 간호법은 간호사만을 위한 법이 아니다. 현행 의료법의 한계와 간호사의 근무환경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의료 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가 내 일이 될 수 있다. 보건의료 개혁을 위해 간호법이 필요하다.

서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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